
일제강점기 후반, 일본 제국주의는 전쟁 수행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강제징용·강제근로·군속 및 위안부 동원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이는 단순한 ‘노역 동원’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조직적 폭력이며 인권 침해 그 자체였다. 조선 청년들은 광산·군수공장·전쟁터로 끌려갔고,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중노동을 강요당했다. 식량·의복·임금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거나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이들도 많았다. 여성들은 ‘정신대’라는 이름 아래 성적 착취와 인권 유린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 정책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피해자와 유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며,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도 이 역사적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을 이어가고 있다.
전쟁은 총칼만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빼앗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일본 제국주의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확대로 전쟁 수행 능력이 부족해지자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는 법과 제도를 통해 체계적으로 진행된 국가적 폭력이었으며, 식민지 조선은 일본 전쟁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되었다. 조선의 젊은이들은 학업과 일상을 빼앗기고, 어느 날 갑자기 징집영장을 받아 먼 타국의 공장·광산·전쟁터로 보내졌다. 부모와 이별하며 떠나는 청년들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절망이 가득했다. 여성들 또한 ‘근로정신대’라는 명목 아래 끌려가 성적 착취라는 극단적 고통을 당했다. 이는 단순히 전쟁 참여가 아니라, 조선 사회 전체가 일본의 전쟁 자원으로 소비된 비극의 역사였다.
강제징용·군수동원·위안부 등 다양한 형태의 동원 체계
첫째, 강제징용(근로정책)이다. 조선 청년들은 일본 본토·사할린·군수 공장·광산·철도 건설 현장 등으로 끌려갔으며, 하루 12시간이 넘는 중노동이 강요되었다.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말 한마디로 폭행과 강압이 이어졌다. 임금은 약속되지 않거나 체불되었고, 위험한 환경에서 목숨을 잃는 사례도 많았다. 둘째, 군속·학도병·징병제 실시다. 1944년부터 일본은 조선인에게 정식 징병제를 적용했고, 많은 조선 청년이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갔다. 이들은 일본군의 군수 노동·전투 지원·전선 배치 등 다양한 형태로 동원되었으며, 여러 전투에서 희생되었다. 셋째, **여성에 대한 동원**, 즉 ‘위안부’ 문제이다. 일본군 위안소로 보내진 조선 여성들은 성적 착취·폭력·감금 속에서 인간의 기본권을 잃은 채 참혹한 삶을 강요당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국제적으로 논쟁이 지속되는 대표적 인권 유린 사례다. 넷째, **물자·식량 동원**이다. 일본은 조선의 쌀·금속·의료품 등 생필품까지 수탈했고, 이는 조선 서민 생활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정책은 조선을 ‘전쟁 자원 공급 기지’로 만들려는 식민지 전략의 일환이었다.
전쟁이 끝나도 끝나지 않은 고통,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
강제징용과 강제동원은 전쟁이 끝났다고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 돌아온 이들은 심각한 후유증·빈곤·질병에 시달렸으며, 일본의 보상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할린에 고립된 조선인, 일본 공장에서 사망 후 유해조차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아픔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과거 청산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 전쟁 범죄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한 보호 장치이며,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정의를 되찾기 위한 과정이다. 강제동원의 비극은 조선인의 고통만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인류사적 경고다. 이 고통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지키는 첫걸음이다.